제가 끌려간 곳은 마포의 한 병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정신병원으로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안 사실은 가정의학과 의원이었습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 면허만 있으면 19병상의 정신질환자 격리 치료가 가능합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경우는 60병상까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정신의학과 전문의라도 2년 과정의 교과과정을 이수해야 알코올중독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구급차에서 끌려 내려진 저는 병원 2층으로 올려졌습니다. 육중한 철문이 끼익하고 열리고 거세게 등을 떠밀려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철문이 철컥하고 닫힐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앞에는 넓지 않은 로비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30명 가까운 환자들이 줄지어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집단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로비에 이어 긴 복도가 나타나고, 복도 좌우에 각각 3개의 병실이 줄줄이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중 우측 첫 번째 회복실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극심한 금단(진전섬망)의 고통과 함께 알코올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금단 증상은 체내에 들어온 알코올이 간에서 분해되어 빠져나가고 약 24시간에서 72시간 사이에 나타납니다. 경련이 일고, 헛것이 보이는 환시, 헛소리가 들리는 환청 등 환각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느 여성 환자의 경우, 갱년기에 접어든 그녀는 혼자 살며 외동딸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딸이 출근하고 나면 동네 사랑방에 모여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포천막걸리 마시며 소일했습니다.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술에 의존하여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딸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던 그녀는 인도에서 중학생이 타는 자전거와 충돌했습니다. 정형외과 병원에 실려 간 그녀는 다리 골절상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리에 깁스하고 치료를 시작한 그녀는 이틀이 지나자 심한 금단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망한 남편이 자신을 부른다고 헛소리하는가 하면 맹견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비명을 질러 병실의 환자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그녀를 지켜본 정형외과 의사는 조현병 진단을 내리고 정신과로 이송하기도 했습니다. 경험 없는 의사들이 이런 심한 금단 증상을 조현병으로 오진하기도 합니다. 60 초반의 남성 환자는 나비를 잡는다고 온 병실을 헤매기도 하고, 40대 환자는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극심한 금단에 시달렸습니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 보통 2~3이면 끝나고, 길어야 1주일 정도인데, 저는 약 2개월의 회복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의아한 것은 그렇게 심한 금단 환자에게 왜 금단 치료제를 처방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손이 떨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식판에 머리를 처박고 먹어야 했습니다. 환시 와 환청에도 시달렸습니다. 회복실 침상에 누워 있으면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병실 출입문 쪽에 사립문이 나타나고, 그 사립문 밖에서 어린 제 아들이 아빠 빨리 오라고 부릅니다. 몸 상태가 엉망인 저는 아들의 부름에 따라 병실 입구로 비틀거리면 나가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럴 때마다 회복실을 지키는 환자 중 선발된 봉사자가 저를 강하게 저지합니다.
집단 프로그램을 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사교 집단의 예배 행위로 보였습니다. 나는 목사가 되어 그들의 사교 행위를 막으려고 악한 사탄 마귀 물러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이롱 목사가 되었습니다.
환청 환시에 시달리며, 병실을 나가려는 저는 즐길거리가 없는 병원에서 환자들의 장난감이 되어 있었습니다. 병실은 오래된 일본식 2층 건물이었는데 바람벽에 창문 아래에 벽장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다고 저를 속여 들어가게 했습니다. 제가 그들 말에 속아 벽장 속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아 저를 괴롭힙니다. 저는 사람 살리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럴 때마다 환자들은 손뼉을 치며 깔깔대고 웃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의 병실 생활에서 그런 저의 놀림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손 떨림이 멈추고, 수면유도제 없이 잠이 쏟아져야 신체적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정상적인 병원에서는 이런 회복기를 대략 1개월 정도로 잡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병원의 규정에 따라 고작 1주 정도가 지나자, 교육장에 끌려 나갔습니다.
치료 교육 내용은 암기 위주였습니다.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의 레이놀즈 네이버 교수가 봉정한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와 A.A.의 <12단계>와 <12전통> 그리고 빅 북이라 불리는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중 몇 페이지를 암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알코올의 과다 사용으로 뇌세포의 손상이 심한 알코올중독자들의 기억력 회복에 암기는 도움이 되고, 또 세계적으로 검증받은 A.A.의 회복 프로그램을 인식시키는 것은 치료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A.A.(Alcoholics Anonymous)는 1935년 미국 오하이오주 아크론이라는 소도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병원도 치료를 포기한 두 환자, 빌 윌슨과 밥 스미스에 의해 설립된 자조 모임입니다.
이 모임을 통해 많은 중독자들이 회복되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1995년 판 빅 북(책 이름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에 의하며 145개국에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으니 더 많은 나라에 보급되었겠지요. 우리나라도 거의 모든 도시에서 이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조 모임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정신병원에서 치료 메뉴얼로 사용하며, 잘못 운용하여 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암기에 비중을 두다 보니 암기 성과에 따라 교육장 좌석의 배치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환자의 지위도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점적인 프로그램이 경험담 발표였습니다. A.A.회원들은 경험담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A.A.모임에 가면 서로 앞다투어 지난날 마시던 시절의 비참했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주합니다. 이런 모습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이런 경험담은 교회의 고해성사 성격을 띠는데, 잘못 운용되어 소위 잘나가던 시절의 음주 행각의 자랑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량의 자랑, 술꾼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의 과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종의 음주 영웅담이 되곤 했습니다.
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금단 상태에서 끌려 나간 첫 교육, 집단 치료 프로그램이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과제를 내어줍니다. 일종의 숙제 같은 것입니다. <나는 왜 술을 마셨나>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나> <누구에게 왜 어떤 거짓말을 했나> 등의 과제를 줍니다.
1주일에 한 시간씩 모여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신입 환자가 제일 앞자리 그리고 소위 고참들은 뒷자리와 구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발표자로 입원 2~3개월 차 환자가 지명되어 앞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주어진 과제의 답 10개를 순서대로 읽습니다. 10개의 답은 의무적으로 써야 합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이 시작됩니다, 다들 술이라면 그들 말대로 동대표 시 대표쯤은 되는 환자들이라 거짓말은 이내 들통이 났습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답변에 트집을 잡아 공격합니다. 그럴 때면 욕설이 난무하고, 슬리퍼 짝이 날아다니는 살벌한 질문 공격이 계속됩니다. 북한의 인민 재판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소위 말하는 병원 군기였습니다. 군대 내무반의 군기보다 더 엄했습니다. 물론 술로 인해 무질서한 생활을 해온 환자들이었으나 그들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먼저 입원한 환자가 선임입니다. 그들은 선임임을 내세워 아버지뻘의 환자에게도 반말은 물론 심한 욕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한 환자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화장실에 숨어들어 홀로 눈물을 쏟는 모습이 종종 발견되었습니다.
제가 끌려간 곳은 마포의 한 병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정신병원으로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안 사실은 가정의학과 의원이었습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 면허만 있으면 19병상의 정신질환자 격리 치료가 가능합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경우는 60병상까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정신의학과 전문의라도 2년 과정의 교과과정을 이수해야 알코올중독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구급차에서 끌려 내려진 저는 병원 2층으로 올려졌습니다. 육중한 철문이 끼익하고 열리고 거세게 등을 떠밀려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철문이 철컥하고 닫힐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앞에는 넓지 않은 로비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30명 가까운 환자들이 줄지어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집단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로비에 이어 긴 복도가 나타나고, 복도 좌우에 각각 3개의 병실이 줄줄이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중 우측 첫 번째 회복실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극심한 금단(진전섬망)의 고통과 함께 알코올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금단 증상은 체내에 들어온 알코올이 간에서 분해되어 빠져나가고 약 24시간에서 72시간 사이에 나타납니다. 경련이 일고, 헛것이 보이는 환시, 헛소리가 들리는 환청 등 환각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느 여성 환자의 경우, 갱년기에 접어든 그녀는 혼자 살며 외동딸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딸이 출근하고 나면 동네 사랑방에 모여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포천막걸리 마시며 소일했습니다.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술에 의존하여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딸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던 그녀는 인도에서 중학생이 타는 자전거와 충돌했습니다. 정형외과 병원에 실려 간 그녀는 다리 골절상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리에 깁스하고 치료를 시작한 그녀는 이틀이 지나자 심한 금단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망한 남편이 자신을 부른다고 헛소리하는가 하면 맹견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비명을 질러 병실의 환자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그녀를 지켜본 정형외과 의사는 조현병 진단을 내리고 정신과로 이송하기도 했습니다. 경험 없는 의사들이 이런 심한 금단 증상을 조현병으로 오진하기도 합니다. 60 초반의 남성 환자는 나비를 잡는다고 온 병실을 헤매기도 하고, 40대 환자는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극심한 금단에 시달렸습니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 보통 2~3이면 끝나고, 길어야 1주일 정도인데, 저는 약 2개월의 회복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의아한 것은 그렇게 심한 금단 환자에게 왜 금단 치료제를 처방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손이 떨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식판에 머리를 처박고 먹어야 했습니다. 환시 와 환청에도 시달렸습니다. 회복실 침상에 누워 있으면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병실 출입문 쪽에 사립문이 나타나고, 그 사립문 밖에서 어린 제 아들이 아빠 빨리 오라고 부릅니다. 몸 상태가 엉망인 저는 아들의 부름에 따라 병실 입구로 비틀거리면 나가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럴 때마다 회복실을 지키는 환자 중 선발된 봉사자가 저를 강하게 저지합니다.
집단 프로그램을 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사교 집단의 예배 행위로 보였습니다. 나는 목사가 되어 그들의 사교 행위를 막으려고 악한 사탄 마귀 물러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이롱 목사가 되었습니다.
환청 환시에 시달리며, 병실을 나가려는 저는 즐길거리가 없는 병원에서 환자들의 장난감이 되어 있었습니다. 병실은 오래된 일본식 2층 건물이었는데 바람벽에 창문 아래에 벽장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다고 저를 속여 들어가게 했습니다. 제가 그들 말에 속아 벽장 속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아 저를 괴롭힙니다. 저는 사람 살리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럴 때마다 환자들은 손뼉을 치며 깔깔대고 웃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의 병실 생활에서 그런 저의 놀림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손 떨림이 멈추고, 수면유도제 없이 잠이 쏟아져야 신체적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정상적인 병원에서는 이런 회복기를 대략 1개월 정도로 잡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병원의 규정에 따라 고작 1주 정도가 지나자, 교육장에 끌려 나갔습니다.
치료 교육 내용은 암기 위주였습니다.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의 레이놀즈 네이버 교수가 봉정한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와 A.A.의 <12단계>와 <12전통> 그리고 빅 북이라 불리는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중 몇 페이지를 암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알코올의 과다 사용으로 뇌세포의 손상이 심한 알코올중독자들의 기억력 회복에 암기는 도움이 되고, 또 세계적으로 검증받은 A.A.의 회복 프로그램을 인식시키는 것은 치료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A.A.(Alcoholics Anonymous)는 1935년 미국 오하이오주 아크론이라는 소도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병원도 치료를 포기한 두 환자, 빌 윌슨과 밥 스미스에 의해 설립된 자조 모임입니다.
이 모임을 통해 많은 중독자들이 회복되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1995년 판 빅 북(책 이름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에 의하며 145개국에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으니 더 많은 나라에 보급되었겠지요. 우리나라도 거의 모든 도시에서 이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조 모임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정신병원에서 치료 메뉴얼로 사용하며, 잘못 운용하여 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암기에 비중을 두다 보니 암기 성과에 따라 교육장 좌석의 배치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환자의 지위도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점적인 프로그램이 경험담 발표였습니다. A.A.회원들은 경험담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A.A.모임에 가면 서로 앞다투어 지난날 마시던 시절의 비참했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주합니다. 이런 모습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이런 경험담은 교회의 고해성사 성격을 띠는데, 잘못 운용되어 소위 잘나가던 시절의 음주 행각의 자랑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량의 자랑, 술꾼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의 과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종의 음주 영웅담이 되곤 했습니다.
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금단 상태에서 끌려 나간 첫 교육, 집단 치료 프로그램이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과제를 내어줍니다. 일종의 숙제 같은 것입니다. <나는 왜 술을 마셨나>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나> <누구에게 왜 어떤 거짓말을 했나> 등의 과제를 줍니다.
1주일에 한 시간씩 모여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신입 환자가 제일 앞자리 그리고 소위 고참들은 뒷자리와 구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발표자로 입원 2~3개월 차 환자가 지명되어 앞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주어진 과제의 답 10개를 순서대로 읽습니다. 10개의 답은 의무적으로 써야 합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이 시작됩니다, 다들 술이라면 그들 말대로 동대표 시 대표쯤은 되는 환자들이라 거짓말은 이내 들통이 났습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답변에 트집을 잡아 공격합니다. 그럴 때면 욕설이 난무하고, 슬리퍼 짝이 날아다니는 살벌한 질문 공격이 계속됩니다. 북한의 인민 재판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소위 말하는 병원 군기였습니다. 군대 내무반의 군기보다 더 엄했습니다. 물론 술로 인해 무질서한 생활을 해온 환자들이었으나 그들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먼저 입원한 환자가 선임입니다. 그들은 선임임을 내세워 아버지뻘의 환자에게도 반말은 물론 심한 욕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한 환자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화장실에 숨어들어 홀로 눈물을 쏟는 모습이 종종 발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