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인을 길에서 만난다. 그럴 때 주고받는 인사가 무엇인가? 우리는 통상 하나의 공식 같은 말을 나눈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보리고개로 알려진 길고 긴 궁핍하던 시절의 배고픔에 한이 맺혀 지금도 이렇게 먹는 것이 인사로 진화된 것일까?
또 다른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옛 어른들은 사 먹는 밥은 아무리 비싸도 살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집밥을 먹어야 살이 된다고 했다. 돈 주고 사는 음식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머니나 아내의 손맛 즉,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다.
부잣집 며느리가 출산했는데 젖이 모자랐다. 그래서 젖먹이 딸린 유모를 고용했다. 그래야 젖이 잘 나오니까.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부잣집 아이에게 먼저 젖을 먹이고 남는 젖을 유모의 아이에게 먹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부잣집 아이는 빼빼 말라가는데 유모 아이만 포동포동 살이 찌는 것이 아닌가? 유모가 어린아이 둘을 양 엽에 끼고 자는 모습을 보니까 유모의 온기(사랑)가 자기 자식에게만 흘러가더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같은 젖이라도 사랑이 들어간 젖과 그러하지 않은 젖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단이 가족이다. 인간은 동물 중에 가장 연약한 동물이다. 그들에겐 적이 공격했을 때 빨리 도망칠 사슴 같은 빠른 발도 없다.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이빨도, 곰같이 강한 발도 없다. 물고기처럼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도 없고, 새처럼 날 수도 없다. 그리하여 자신들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동물들도 그러하듯 군집 생활을 시작했다. 연약한 동물들이 모여 사는 것을 군집본능이라고 한다.
그 군집본능이 나타나는 최소 단위가 가족이고, 가족이 모여 씨족이 되고, 씨족으로도 부족하여 국가를 만들었다. 그 국가도 위험을 느낄 때 국가와 국가가 연합을 이루는 것이 동맹이 아닌가?
그래도 부족하면 국가를 보호해 줄 인간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라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필요했다. 인간이 출현하면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수호신인 토템 신앙이 생겨났고, 그것이 진화하여 오늘의 종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가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고 어느 때를 가리지 않고 종교가 존재한다. 옛날 원시 시대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아프리카 원시림부터 뉴욕 맨해튼까지
이런 연약한 인간 집단의 최소 단위가 가족인 만큼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가족, 즉 가정이다. 먼저 가족이란 개념을 살펴보자. 가족이란 부부를 기초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이라고 풀이한다. 한 집안의 친족을 일컫는 말이다. 가정은 한 가족이 살림하고 있는 집안,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의 울안, 또는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사전을 풀이한다.
또 식구란 말도 많이 쓴다. 식구란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형제 자매 사이라도 함께 살며 한솥밥을 먹지 않으면 가족이지 식구는 아니란 이야기다. 그만치 함께 음식을 나누는 관계의 중요성을 이런 말의 깊은 뜻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결혼에 실패하고 홀로 하와이에서 생활하던 친구가 고향이 그리워 그리고 친구가 그리워 잠시 귀국했다. 부모 모두 북한에서 6,25 전쟁 때 월남한 그는 부모가 돌아가시자 일가친척 한 사람도 한국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더 홀로였다. 그렇게 외국에서 외롭게 혼자 살던 그를 만나는 친구들 모두 반기며 고급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대접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평소에 먹던 대로 된장찌개와 정갈한 소찬에 한두 가지 생선과 고기를 추가하여 그를 대접했다. 그렇게 가정식을 대접받던 그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리고 말했다. 이런 집밥을 먹어본 지 너무 오래라고. 마치 옛날 돌아가신 어머니 밥상을 받는 것 같다고. 집밥이 그리운 것을 밥보다 그런 밥을 나눌 수 있는 가정, 즉 식구가 그리운 것이 아니었을까?
동물에게는 귀소본능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인간들은 귀소본능을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고 표현한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 사회의 최소 단위가 가정이다. 사람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 또한 가정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렇게 가정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다. 알코올중독으로 가족을 잃고, 가정을 잃은 사람들, 아니 버린 사람들이란 비난을 받는다. 사회는 그들을 가정 파괴범이라고 하지 않는가?
동료 알코올중독자 한 사람이 인사불성이 되어 다시 병원에 끌려왔다. 그는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었다. 내가 병원에 첫 입원을 했을 때였다.
다른 환자들 모두가 프로그램실에서 교육받고 있을 때, 나는 보행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동안 술에 지친 나는 너무나 허약해져 제대로 걷지조차 못했다. 또 오랜 음주로 소뇌의 마취가 풀리지 않아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걸음으로 겨우겨우 화장실에나 벽을 타고 다닐 때였다. 그런 나는 다른 환자들의 교육 시간이면 그 환자의 부축을 받으며 긴 복도에서 보행 연습에 열중했다.
그의 도움을 받는 동안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정도 많이 들어 누구보다도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그런 그는 입원한 지 3개월 만에 퇴원했다.
그가 퇴원하고 2개월가량 지났을 때였다. 그가 만취 상태로 끌려왔다. 나에게 그의 재발은 큰 충격이었다. 그는 성실했고, 열심이어서 단주에 성공할 것으로 믿었었다. 그런 그가 재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충격은 작은 것에 불과했다. 더 큰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늦은 시간에 사건이 터졌다. 신입이든 재발이든 새 환자가 입원하면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화장실 출입은 반드시 그 방 근무자(같은 환자인 봉사자를 이렇게 불렀다)가 동행하며 보호해야 했다. 그러나 너무나 잘 아는 환자고 평소 성실한 환자였기에 믿고 혼자 화장실로 보낸 것이 문제였다.
혼자 화장실로 들어간 그는 쓰고 있던 안경 렌즈를 깨어 유리 파편으로 팔의 동맥을 그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화장실을 찾은 다른 환자에 의해 피를 흘리고 쓰러진 그가 발견되었다. 병원에 비상이 걸리고, 그는 재빨리 이웃 외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혈관 봉합수술은 받고 돌아온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1주일이 지나자,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에게 차마 왜 그런 자해를 했는지 물을 수 없었다.
한 열흘쯤 지났을 때 그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이들 모습에 기가 막혔다. 아내는 아이들을 버리고 사라졌고, 그런 아이들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불쌍하다고 밥을 가져다주어 그걸 먹고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남루한 거지가 되어 있었다.
그 날밤 뜬눈으로 날밤을 새운 그는 다음날부터 인력시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남대문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한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돈을 벌었다.
노가다라 부르고, 날품팔이라 부르는 전문 일용직 노동자들은 몸이 재산이기 때문에 한 달에 20일 이상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돈이 아쉬워 한 달이 30일인 것이 원망스러웠다. 40일쯤 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인데.
학교 친구들 모두 메이커 있는 옷이며 운동화며 책가방 등 고가의 학용품 자랑에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죄스러워 그동안 못 해 준 것을 마음껏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메이커 있는 상품들은 왜 그리 비싼지?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과로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아이들은?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알코올중독자다. 또 재발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돌보아 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정말 거지가 되겠지. 생각 끝에 그는 결심했다.
차라리 내가 먼저 죽자, 그러면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 보육원으로 보내지겠지, 그러면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준다고 하지 않는가? 술에 미쳐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아비 밑에서 거지 아이들로 사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나을 것이 아닌가?
그래 죽자. 이왕 죽는 것, 그 원수 같은 술이나 실컷 먹고 죽자, 소주 열 병쯤 먹으면 치사량은 충분할 테니 먹고 죽자. 소주 10병을 사다 놓고 아이들이 잠들자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깨어보니 저승이 아니라 병원이 아닌가. 그래서 마저 죽으려고 화장실에서 안경 파편으로 동맥 절단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가 마시고 죽지 못한 것은 인체보호 프로그램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마취제인 술의 마취 작용으로 먼저 소뇌 마취가 심해지면 운동신경의 마취가 일어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술병조차 들 수 없게 된다. 음주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면 인체보호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구토를 일으켜 인체에 들어온 술을 배출한다.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마실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여기까지 몰랐던 것이다.
오랜만에 지인을 길에서 만난다. 그럴 때 주고받는 인사가 무엇인가? 우리는 통상 하나의 공식 같은 말을 나눈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보리고개로 알려진 길고 긴 궁핍하던 시절의 배고픔에 한이 맺혀 지금도 이렇게 먹는 것이 인사로 진화된 것일까?
또 다른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옛 어른들은 사 먹는 밥은 아무리 비싸도 살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집밥을 먹어야 살이 된다고 했다. 돈 주고 사는 음식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머니나 아내의 손맛 즉,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다.
부잣집 며느리가 출산했는데 젖이 모자랐다. 그래서 젖먹이 딸린 유모를 고용했다. 그래야 젖이 잘 나오니까.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부잣집 아이에게 먼저 젖을 먹이고 남는 젖을 유모의 아이에게 먹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부잣집 아이는 빼빼 말라가는데 유모 아이만 포동포동 살이 찌는 것이 아닌가? 유모가 어린아이 둘을 양 엽에 끼고 자는 모습을 보니까 유모의 온기(사랑)가 자기 자식에게만 흘러가더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같은 젖이라도 사랑이 들어간 젖과 그러하지 않은 젖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단이 가족이다. 인간은 동물 중에 가장 연약한 동물이다. 그들에겐 적이 공격했을 때 빨리 도망칠 사슴 같은 빠른 발도 없다.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이빨도, 곰같이 강한 발도 없다. 물고기처럼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도 없고, 새처럼 날 수도 없다. 그리하여 자신들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동물들도 그러하듯 군집 생활을 시작했다. 연약한 동물들이 모여 사는 것을 군집본능이라고 한다.
그 군집본능이 나타나는 최소 단위가 가족이고, 가족이 모여 씨족이 되고, 씨족으로도 부족하여 국가를 만들었다. 그 국가도 위험을 느낄 때 국가와 국가가 연합을 이루는 것이 동맹이 아닌가?
그래도 부족하면 국가를 보호해 줄 인간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라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필요했다. 인간이 출현하면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수호신인 토템 신앙이 생겨났고, 그것이 진화하여 오늘의 종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가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고 어느 때를 가리지 않고 종교가 존재한다. 옛날 원시 시대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아프리카 원시림부터 뉴욕 맨해튼까지
이런 연약한 인간 집단의 최소 단위가 가족인 만큼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가족, 즉 가정이다. 먼저 가족이란 개념을 살펴보자. 가족이란 부부를 기초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이라고 풀이한다. 한 집안의 친족을 일컫는 말이다. 가정은 한 가족이 살림하고 있는 집안,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의 울안, 또는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사전을 풀이한다.
또 식구란 말도 많이 쓴다. 식구란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형제 자매 사이라도 함께 살며 한솥밥을 먹지 않으면 가족이지 식구는 아니란 이야기다. 그만치 함께 음식을 나누는 관계의 중요성을 이런 말의 깊은 뜻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결혼에 실패하고 홀로 하와이에서 생활하던 친구가 고향이 그리워 그리고 친구가 그리워 잠시 귀국했다. 부모 모두 북한에서 6,25 전쟁 때 월남한 그는 부모가 돌아가시자 일가친척 한 사람도 한국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더 홀로였다. 그렇게 외국에서 외롭게 혼자 살던 그를 만나는 친구들 모두 반기며 고급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대접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평소에 먹던 대로 된장찌개와 정갈한 소찬에 한두 가지 생선과 고기를 추가하여 그를 대접했다. 그렇게 가정식을 대접받던 그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리고 말했다. 이런 집밥을 먹어본 지 너무 오래라고. 마치 옛날 돌아가신 어머니 밥상을 받는 것 같다고. 집밥이 그리운 것을 밥보다 그런 밥을 나눌 수 있는 가정, 즉 식구가 그리운 것이 아니었을까?
동물에게는 귀소본능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인간들은 귀소본능을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고 표현한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 사회의 최소 단위가 가정이다. 사람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 또한 가정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렇게 가정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다. 알코올중독으로 가족을 잃고, 가정을 잃은 사람들, 아니 버린 사람들이란 비난을 받는다. 사회는 그들을 가정 파괴범이라고 하지 않는가?
동료 알코올중독자 한 사람이 인사불성이 되어 다시 병원에 끌려왔다. 그는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었다. 내가 병원에 첫 입원을 했을 때였다.
다른 환자들 모두가 프로그램실에서 교육받고 있을 때, 나는 보행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동안 술에 지친 나는 너무나 허약해져 제대로 걷지조차 못했다. 또 오랜 음주로 소뇌의 마취가 풀리지 않아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걸음으로 겨우겨우 화장실에나 벽을 타고 다닐 때였다. 그런 나는 다른 환자들의 교육 시간이면 그 환자의 부축을 받으며 긴 복도에서 보행 연습에 열중했다.
그의 도움을 받는 동안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정도 많이 들어 누구보다도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그런 그는 입원한 지 3개월 만에 퇴원했다.
그가 퇴원하고 2개월가량 지났을 때였다. 그가 만취 상태로 끌려왔다. 나에게 그의 재발은 큰 충격이었다. 그는 성실했고, 열심이어서 단주에 성공할 것으로 믿었었다. 그런 그가 재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충격은 작은 것에 불과했다. 더 큰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늦은 시간에 사건이 터졌다. 신입이든 재발이든 새 환자가 입원하면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화장실 출입은 반드시 그 방 근무자(같은 환자인 봉사자를 이렇게 불렀다)가 동행하며 보호해야 했다. 그러나 너무나 잘 아는 환자고 평소 성실한 환자였기에 믿고 혼자 화장실로 보낸 것이 문제였다.
혼자 화장실로 들어간 그는 쓰고 있던 안경 렌즈를 깨어 유리 파편으로 팔의 동맥을 그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화장실을 찾은 다른 환자에 의해 피를 흘리고 쓰러진 그가 발견되었다. 병원에 비상이 걸리고, 그는 재빨리 이웃 외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혈관 봉합수술은 받고 돌아온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1주일이 지나자,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에게 차마 왜 그런 자해를 했는지 물을 수 없었다.
한 열흘쯤 지났을 때 그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이들 모습에 기가 막혔다. 아내는 아이들을 버리고 사라졌고, 그런 아이들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불쌍하다고 밥을 가져다주어 그걸 먹고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남루한 거지가 되어 있었다.
그 날밤 뜬눈으로 날밤을 새운 그는 다음날부터 인력시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남대문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한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돈을 벌었다.
노가다라 부르고, 날품팔이라 부르는 전문 일용직 노동자들은 몸이 재산이기 때문에 한 달에 20일 이상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돈이 아쉬워 한 달이 30일인 것이 원망스러웠다. 40일쯤 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인데.
학교 친구들 모두 메이커 있는 옷이며 운동화며 책가방 등 고가의 학용품 자랑에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죄스러워 그동안 못 해 준 것을 마음껏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메이커 있는 상품들은 왜 그리 비싼지?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과로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아이들은?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알코올중독자다. 또 재발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돌보아 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정말 거지가 되겠지. 생각 끝에 그는 결심했다.
차라리 내가 먼저 죽자, 그러면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 보육원으로 보내지겠지, 그러면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준다고 하지 않는가? 술에 미쳐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아비 밑에서 거지 아이들로 사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나을 것이 아닌가?
그래 죽자. 이왕 죽는 것, 그 원수 같은 술이나 실컷 먹고 죽자, 소주 열 병쯤 먹으면 치사량은 충분할 테니 먹고 죽자. 소주 10병을 사다 놓고 아이들이 잠들자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깨어보니 저승이 아니라 병원이 아닌가. 그래서 마저 죽으려고 화장실에서 안경 파편으로 동맥 절단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가 마시고 죽지 못한 것은 인체보호 프로그램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마취제인 술의 마취 작용으로 먼저 소뇌 마취가 심해지면 운동신경의 마취가 일어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술병조차 들 수 없게 된다. 음주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면 인체보호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구토를 일으켜 인체에 들어온 술을 배출한다.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마실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여기까지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