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치유 길라잡이

제9회 음주 충동은 유령인가

관리자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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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하고 다시 병원에 돌아온 환자들에게 물어본다. 30대 후반의 환자는 병원 문을 나서고 겨우 6시간 만에 만취 상태로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암기도 잘하고, 발표도 잘한 환자들 중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가 재발한 것이다. 너무나 의외의 사건이라 환자들 모두 아연실색했다. 왜 마셨냐고 물으니까 자기도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코올중독자는 마시지 않을 때는 자신의 중독의 흔적은 물론 그림자도 평소에는 찾지 못한다. 그림자보다도 더 교묘하게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중독자의 방비가 허술할 때 불쑥 머리를 내민다. 그래서 빅 북에서는 알코올을 교활하다고 했던가?

병원이나 치료기관에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퇴원 전에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외출과 외박이다. 환자 보호자는 의사들과 퇴원을 의논한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조금 부족하다며 퇴원의 연기를 권고하지만 어떤 의사들은 보호자의 의견을 참작하여 외출부터 권고한다.

먼저 외출을 보내보고, 마시지 않고 무사히 병원에 돌아오면 두어 번 더 외출을 시도한다. 이번에도 마시지 않고 병원에 잘 돌아온다. 1차 시험은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2차 시험이 시작된다.

이번 시험은 외박이다. 1박 2일에서 2박 3일로 외박 기간이 연장된다. 이번 시험도 무사히 통과한다. 이런 시험을 2, 3회 무사히 치르면 의사나 보호자는 환자의 단주 의지를 믿고 퇴원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환자가 병원 문을 나서기 무섭게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술을 마시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충청도 C시에서 내가 겪은 일이다. 규모가 300병상 규모의 병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려고 차에 올랐다. 현관 앞을 지나려는데 50대 여성 한 분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환자 면회를 마치고 귀갓길 차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였다. 차를 멈추고 물었다. 면회를 마치고 차를 기다리느냐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곳 병원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운행하는 시내버스도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C시의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모시기로 하고 승차를 권유했다. 차에 오른 그녀에게 ”면회하고 가시는군요?“ 하고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나를 경악하게 했다.

남편은 서울지하철공사 직원으로 일 년 치 병가를 모두 알코올중독 치료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늘 퇴원하여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 직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간이 버스 정류소에 시외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좀체 오지 않았다.

밥때를 놓친 시간이라 시장기가 엄습했다. 마침 간이 정류장 옆에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둘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짜장면과 짬뽕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는 사이 남편이 화장실을 찾았다.

올 시간이 지난 데도 남편을 돌아오지 않았다. 아차 싶어 그녀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곳에 남편은 없었다. 다시 구멍가게를 겸한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남편을 천연덕스럽게 소주 병나발 불고 있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남편을 병원에 재입원시키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 직장도 해고되면 아이들도 공부 중인데 어떻게 사느냐고 눈물짓는 그녀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없었다.

 

이런 유형의 재발은 자주 볼 수 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보호자 몰래 술을 마시고 다시 병원에 잡혀 오는 환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약 3개월간 치료를 받고 퇴원할 때, 환자 자신도 그 누구도 바로 마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병원의 입원 치료를 받기 전이었다. 지인의 강권으로 시 외곽에 있는 유명 기도원에서 약 두 달 생활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는 매일 집회가 열렸다. 유명 부흥강사로 알려진 목사님들이 와서 집회를 열었다. 자신과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 고질병과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등 온갖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원장님은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원장님의 조언을 듣고자 모여들었다. 집회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언 기도를 해 주었다.

그런 개별 예언 기도가 끝나고 원장님은 나를 소개한 사람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것은 특혜로 아무에게나 그런 혜택을 베풀지 않는다고 했다. 나를 그곳에 소개한 분이 그 원장과 친한 사이로 나는 추측했다.

원장은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은 큰일을 할 사람이니 자기와 1년을 기도원에서 같이 생활하자는 것이었다. 1년이라? 나는 원장의 제안을 수락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곳을 소개한 분의 체면을 생각하여 거부할 수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곳에서의 2개월은 전혀 술 생각조차 없는 편안한 생활이었다. 24시간 문이 개방된 그곳에서 얼마든지 술을 마실 수 있었지만 술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술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는 됐다 싶어 귀가를 요청했다. 원장은 1년 연장을 이야기하며 나의 귀가를 만류했다.

당시 기도원들은 그곳에서 은혜를 받고 신학 공부를 시켜 목사로 만드는 것을 기도원의 자랑이고, 실적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내가 그런 케이스에 걸려든 것이었다.


원장의 그런 제안을 거부하고 몰래 기도원을 빠져나온 나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철역 앞 구멍가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술을 아주 자연스럽게 마시는 것이 아닌가? 술 생각이 전혀 없는 데도.

왜 그럴까? 알코올중독은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이다. 마실 때는 사망을 향해 진행하다가 술을 끊으면 완치된 것이 아니라 잠복해 버린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완치된 것으로 오인하고 방심한다. 그리하여 단주생활을 유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자신은 환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평생 환자라는 사실을. 그러나 많은 알코올중독자들은 치료기관 문을 나서는 순간 정신적 해이로 자신이 환자라는 보호 방벽을 무너뜨린다. 그렇게 알코올중독증은 영원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술이 들어온다.

또 병원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시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외출이나 외박으로 병원을 벗어나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만일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마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외출이나 외박의 시험은 거의 퇴원이 임박한 환자들에게 베풀어지는 혜택인데, 그 시험을 잘 통과해야 퇴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환자들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지겨운 병원 생활을 다시 해야 하는데 어찌 마실 수 있겠는가?

이런 각성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시험을 환자들은 어렵지 않게 잘 통과한다. 그러나 퇴원이 이루어지면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각성이 해이해지며, 술에 대한 방어 방벽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렇게 무장해제로 재발한 환자들에게 왜 마셨냐고 물어보면 다들 똑같은 대답을 한다. 왜 마셨는지 자기도 모른다고, 그래서 다들 자기가 마셔놓고 왜 마셨는지 모른다니 말이 되느냐고?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그런 환자들을 비난했었다.


기도원 전성시대에 기도원에서 많은 알코올중독자들을 만난다. 기도원에 수용된 환자들의 절반 이상이 알코올중독자들이고, 나머지가 정신질환자들이었다. 기도원 원장들은 만약 정부에서 기도원을 단속하면 우리가 기도원의 알코올중독자들을 모두 풀어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하며 자신들의 유사 치료 행위를 정당화했다. 당시 정신병원의 병상수는 그들은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때라 금주 기도원이 필요악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기도원의 알코올중독자들은 거의 모두가 강제적으로 끌려와 기도원에서 생활했다.

기도원에 수용된 환자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예배에 동원되었다.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믿음이 강요되었다. 원장들을 설교에서 입버릇처럼 ”믿으면 아멘 하세요“를 강요했다. 화답 안 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그들은 입으로는 큰소리로 '아멘'을 복창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 미안하지만 노멘임니다. ” 하는 것이었다. 눈 감고 기도하는 척하고 졸고, 봉사라 불리는 노역에 강제 동원되고, 그렇게 2년, 3년 시간이 흐른다. 그 동안 술은 마시기는커녕 냄새조차 맡지 못한다. 그렇게 마시지 않았으니 이제는 단주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한다.

 

충청도 어느 도시 외곽의 기도원에서 발생한 사례다. 당시 그 청년은 불과 29세였다. 3년 전 가족이 버리는 심정으로 기도원에 맡겼다고 했다. 인간 폐기물이었다. 죽이든 살리든 원장님 마음대로 하라고, 술 끊고 사람 구실을 하면 다행이지만 죽어도 원망 안겠다고 맡겨졌다.

청년은 열심히 봉사했다. 기도원의 모든 힘든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충직한 집사였다. 그런 그를 어여삐 여긴 원장은 목사로 만들기 위해 신학 공부도 시켰다.

내가 만났을 때 원장은 그 청년의 변화를 자랑했다. 은혜가 충만해 술을 완전히 끊고 방언 기도 물론 방언 통역도 한다고. 이렇게 성공한 사례라고. 내 대답은 간단했다. 이곳은 술로부터 안전지대니까 사회에 나가봐야 안다고.

그해 추석 무렵 기도원에서 하산한 그 청년은 술을 마시다 그 해를 못 넘기고 사망했다. 그 청년에게 기도원은 술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 장벽이자 안전지대였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기도원에만 살 수 없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마시면 안 된다는 인식과 관습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에서는 음주 충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때가 되면, 충동을 제어하던 방어막이 사라지고 음주 충동이 고개를 들고 슬며시 나타난다. 그렇게 재발이 이루어진다.

 

또 다른 사례. 금주기도원 전성기에 많은 알코올중독자들을 기도원이 수용했다. 정신병원의 병상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도원을 필요악으로 규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기도원에 몰려드는 환자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했다. 유급 직원을 두기에는 재정적으로 문제가 많았고, 적은 급료에다 사회와 격리된 기도원에서 숙식하는 일자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쉬지 않았다. 그래서 환자들 중 가방끈이 길고(고학력의 환자를 이렇게 불렀다), 비교적 성실한 환자를 선발하여 봉사를 맡기고, 봉사를 열심히 하면 직원으로 승진시켰다. 그래서 봉사는 특혜였다.

이렇게 직원이 된 환자들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그들은 술 문제 따위는 완전히 해결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치료 교육에는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 술 문제를 해결했는데 왜 필요 없는 교육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고 하산한 그들을 정신병원에서 자주 목격했다.

알코올중독 치료는 교육밖에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반복 교육을 통해 인성의 변화가 있어야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며 알코올중독자 치료 교육은 콩나물시루에 물 붓기였다. 콩나물시루는 밑에 구멍이 뚫려 있다. 위에 주기적으로 물을 부으면 대부분의 물은 구멍을 통해 거의 다 빠져나간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물에 젖은 콩나물이 그 아주 작은 물끼를 먹고 자란다.

대부분의 알코올중독자들은 과도한 음주로 뇌세포가 파괴되어 기억력의 감퇴가 극심하다. 심할 때는 알코올성 치매까지 발생한다. 이런 환자들에게 일반사회의 교육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콩나물시루에 물 붓듯 계속 반복 교육이 이루어져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알코올중독에 관한 교육이 왜 필요한가? 빅 북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알코올중독에 관해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의 단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알코올중독 치료의 교과서 구실을 하는 빅 북에서 왜 이러한 이야기를 할까. 이 구절을 검토해 보자.

사람이 철봉에 매달린다. 전력을 다해 매달려도 과연 몇 분이나 매달릴 수 있을까? 10분 아니면 20분? 거액의 상금이 걸려도 고작 그 정도일 것이다. 그것이 인간 인내력의 한계다.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그 밑에는 거대한 악어가 입을 떡 벌리고 사람이 떨어질 때만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상금을 노릴 때와 같이 10분 아니면 20분만 매달릴까? 혼신 힘뿐만 아니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렇게 위기에 처하면 없는 힘도 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이렇게 악어 구실을 하는 것이 교육이고, 교육을 통해 알코올중독의 무서움을 인식시키고 단주 의지를 길러 주는 것이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임상으로도 입증된다.

 

미국 전후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 노만 메일러의 <나자와 사자>라는 소설이 있다. 세계 제2차대전이 치열하던 시기에 미군이 태평양의 섬에 상륙한다. 그들은 그 섬에 진지를 구축하여 태평양 제해권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섬에 상륙한 미군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목이 울창한 정글을 정글도로 겨우겨우 헤쳐가면 수색에 나선다.

아침에 시작된 수색이 정오 무렵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한 대원의 실수로 벌집을 건드린다. 벌떼의 공격을 받은 대원들은 벌들의 공격을 피해 황급히 도망친다. 출발한 진지까지 돌아와 보니 무려 4시간에 걸쳐 헤쳐간 정글을 겨우 30분 만에 돌아온 것이었다. 초인적인 힘으로 벌 떼의 공격에서 탈출한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위기에 처하면 초인적인 힘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발휘되는 것이다.

미군 수색대가 만난 벌 떼, 치료 교육을 통한 알코올중독의 무서움의 인식. 이런 이유로 A,A,의 빅 북이 알코올중독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을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 의지박약자 등으로 오판하여 도덕군자로 양육하거나 훌륭한 종교인으로 만들면 술도 자연히 끊어질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것에는 힘이 없다. 그 힘을 주는 것이 악어의 역할이 바로 교육이다.

여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알코올중독자는 고의적 무지를 추구한다. 어느 병원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원장이 특강을 준비하고 환자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교육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원장은 모처럼 준비한 교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치료보다 퇴원이 최우선인 정신병원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원장에게 잘 보여야 병원 생활은 물론 퇴원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모르는 알코올중독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원장의 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이 바로 알코올중독자는 고의적 무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알코올중독 치료에는 교육밖에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인데 그들은 교육을 기피한다. 그것은 알코올중독이란 병을 알면 두려워서 못 마시기 때문에 마시기 위해서는 애써 몰라야 한다.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폐암으로 죽기 전 TV 방송에 나와 금연을 호소할 때였다. 시도 때도 없이 방송에 출연하여 ”내 꼴 안 되려면 담배 끊으세요”를 반복했다. 그의 출연이 금연 운동에 도움이 되었다. 지상파 방송은 거의 매일이다시피 흡연의 위험성을 연속으로 방송했다.

그럴 때였다. 나는 내 방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거실에서 혼자 TV를 시청하던 아내가 다급히 나를 호출했다. 웬일인가 싶어 거실로 달려가자, 아내는 TV 화면을 가리켰다. TV에서는 흡연 피해를 방송하고 있었다. “여보 저기 좀 봐!”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던 나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겨우 참으면 내방으로 황급히 돌아갔다. “쓸데없는 것 가지고 사람 화나게 하네.” 하며 속으로 아내를 욕했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담배의 피해를 주입시키려는 것은 가장 듣기 싫은 말로서 고문이나 진배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이 바로 고의적 무지 추구인 것이다.

 

이런 알코올중독자들의 심리적 특성을 간과한 인권 정책이 알코올중독증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환자를 죽이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정신보건법에는 환자의 자발적 동의 없는 교육은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아무리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교육이라 할지라도 자발적이 아닌 강제 상태에서 치료 교육을 시행할 수 없으며, 환자를 강제로 교육장으로 끌어낼 수 없다.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환자의 치료를 방해한다. 이것은 환자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시행하는 규정이나 오히려 환자를 죽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잘못된 제도다.

콩나물시루에 물 붓기 하듯 철저한 교육으로 자신의 알코올중독 상태를 깊이 인식시키고 단주 의지를 강화만이 해결책인데 이런 것이 간과된 채 시행되는 알코올중독 치료의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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